우리는 흔히 '귀가 밝다', '눈이 밝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단순히 소리를 잘 듣거나, 사물을 잘 본다는 뜻이 아니다. 이러한 표현 속에는 더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 누군가의 귀가 밝다고 말할 때, 이는 그가 특정한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듣는다는 의미이며, 눈이 밝다고 말할 때도 특정한 형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 '듣는 것'과 '보는 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강신주 선생님의 '장자수업'을 읽고**
듣는다는 것: 타인의 소리가 아닌 나의 소리를 듣기
보통 듣는다는 것은 귀로 소리를 받아들이는 행위를 의미한다. 하지만 철학적으로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감각적 수용을 넘어선다. 우리는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반응하며 살아간다. 주변의 소리, 타인의 말, 사회적 통념, 권위자의 주장 등 수많은 소리가 우리를 둘러싼다. 이러한 소리들은 때로는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우리 스스로의 목소리를 잃게 만든다. 결국 우리는 타인이 듣고자 하는 것을 듣는 것일 뿐, 스스로 듣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진정한 '귀 밝음'이란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소리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듣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즉, 우리는 귀를 통해 듣지만 마음으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논어』에서도 공자는 "군자는 말하기를 조심하고, 듣기를 신중히 한다"고 했다. 이는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며 듣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 듣는 것'을 실천할 수 있을까? 먼저, 소리의 근원을 탐색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소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어떤 의도를 담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무작정 소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숙고해야 한다. 타인의 판단이나 기준이 아니라,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수동적인 청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청자가 될 수 있다.
본다는 것: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보기
본다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행위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이 밝다'는 표현을 단순히 시력이 좋은 것으로 이해하지만, 그 의미는 훨씬 더 깊다. '눈이 밝다'는 것은 단순히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본다는 것을 뜻한다. 즉,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시선 속에서 존재한다. 사회가 정해놓은 미의 기준, 옳고 그름의 판단, 권력과 이념의 영향 속에서 우리는 때로는 타인의 시선을 따라 보게 된다. 다시 말해, 나의 눈이 아니라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결국 나의 시선을 잃게 만든다. 내가 보는 것이 아닌, 남들이 보라고 하는 것을 보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진정한 '눈 밝음'이란 남들이 보라고 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보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장자』에서도 "진정한 지혜는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귀로 듣고, 자신의 마음으로 판단하는 데 있다"고 했다. 이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어 외부의 영향을 배제하고, 자신만의 시선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스스로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에는 이미 수많은 이미지와 정보가 넘쳐나고, 우리는 그것들에 길들여져 있다. 따라서 스스로 본다는 것은 단순한 직관을 넘어 훈련과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왜 그렇게 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것이 정말로 나의 시선인지, 혹은 타인의 시선이 반영된 것인지 성찰해야 한다.
듣고 본다는 것, 그것은 곧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듣고, 끊임없이 본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 듣고, 스스로 보는 것은 어렵다. 많은 경우 우리는 남들이 듣고자 하는 것을 듣고, 남들이 보라고 하는 것을 본다. 그 결과 우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잃고, 자신의 시선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듣는 것과 보는 것은 단순한 감각적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 방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스스로 듣는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며, 스스로 본다는 것은 자신의 시선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곧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다.
『장자』는 "스스로 얻지 않고 얻는 것은 결국 자신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우리가 듣고 보고 경험하는 모든 것이 결국 외부의 것이라면, 그것은 나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나의 것이 되려면, 스스로 듣고, 스스로 보아야 한다. 즉, 자기 자신을 주체적으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철학자 니체 또한 "너 자신의 길을 가라"고 말했다. 이는 단순히 남들과 다른 길을 가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남들이 보라고 하는 것을 따르지 말고, 스스로 보고 판단하며, 남들이 듣게 하려는 것을 무작정 듣지 말고, 스스로 듣고 생각하라는 뜻에 가깝다. 스스로 듣고, 스스로 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이 아닐까?
결국 우리의 귀가 밝고, 눈이 밝다는 것은 단순한 감각적 기능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스스로 존재하는 방식이며, 세상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태도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스스로 듣고, 스스로 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비로소 자신만의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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