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기존에 계획했던 산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우비를 챙겨 입고 산을 오를 수도 있지만, 빗속을 걸으며 진흙길을 헤쳐 나가는 것은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비 오는 날의 산도 아름답지만, 그에 따르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집에 머물기보다는 색다른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가까운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며 비 오는 날의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찾은 곳이 바로 진주 명석에 위치한 '카페 프로방스'였다. 사실 이곳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곳이 아니다. 빵이 맛있다고 지인이 추천해주었고, 그 말을 듣고 처음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무화과 빵을 맛보았는데, 특이한 풍미와 씹히는 식감이 참 좋았다. 처음 접하는 맛이었지만, 입안 가득 은은한 달콤함이 퍼지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방문에서는 무화과 철이 아닌지 무화과 빵을 찾을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카운터 앞에 진열된 빵들은 저마다의 매력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빵 두 가지를 골랐다. 무얼 먹을까 고민하던 순간도 즐거웠다. 각기 다른 모양과 색감, 그리고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선택을 마치고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까지 주문했다. 커피와 빵을 손에 들고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빗방울이 창을 타고 흐르는 모습이 묘하게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따뜻한 실내에서 창밖의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만족스러웠다. 커피를 한 모금 머금으니 깊고 진한 향이 입안을 감돌았다.
가끔 너무 쓰거나 너무 연한 커피를 마시게 되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커피 맛을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입맛에 맞는 커피가 어떤 것인지는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의 아메리카노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적당히 깊고 풍부한 맛이 좋았다. 빵과 함께 먹기에 부족함이 없는 커피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핸드폰을 잠시 내려놓고, 서로 얼굴을 보며 대화를 주고받는 시간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늘 바쁘게 움직이고, 쉴 틈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곤 한다. 하지만 이런 작은 순간들이야말로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가끔은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주는 특별함이 있다. 그 공간이 반드시 멀리 있어야 하는 것도, 유명한 관광지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가까운 곳에서도 충분히 일상의 색다른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이날의 시간도 내게는 작은 여행과 같았다. 비가 내려도, 산에 가지 못해도, 이렇게 맛있는 빵과 좋은 커피, 그리고 편안한 대화가 있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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